Revolutionize.

A Believer of self-fulfilling prophecies.

Sep 11

마음 연습

예전에 겨울 왕국을 보고 나오는데 여동생과 엄마와 함께 온 듯한 한 남자 아이가 영화가 “감동적이지 않어서 좋았어”라고 평하는 것을 듣는다.
'무슨 소리야 나름 감동적이었는데?’
 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말하지면 눈물 짜내고 뻔한 신파극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를 한 것 같다. 
생각해보면 내 어렸을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.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을 주입하는 것에 사람들은 거부감을 일으킨다. 그래서 어렸을 때 보여줬던 <닥터 지바고>나 <인생은 아름다워> 같은 명작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. 사람이 커간다는 것은 어릴 적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는 것도 의미한다. 
그렇기에 동화에서 나오는 “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”란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. 종국에는 내가 죽든지,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죽든지 무엇이 먼저 오느냐가 다를 뿐 누구든 죽음이라는 무섭고 쓸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.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평생 죽음을 맞이하는 연습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.
나이를 먹어가니까 주위의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몸이 편찮아지는 걸 보게된다. 나이 든 사람만 죽는 게 아니다. 얼굴 모르는 선배의 백혈병으로 인한 꽃다운 나이의 사망 소식,  세월호 사건, 걸그룹 교통 사고, 항공기 추락 사고 등 최근의 각종 사건 사고를 보면서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느껴진다.  
내가 처음 죽음의 공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였다. 엄청난 사건이었던 지라 뉴스에서도 속보로 격양된 어조로 보도가 되었었는데 8시, 9시 경에 튼 뉴스 소리가 거실에 바로 연결된 내 방에서 안 들릴 수가 없었다. 밀폐된 공간에 깔려 목숨을 겨우 부지하면서 수 일 동안 공포에 떨어야 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며칠을 잠을 이룰 수 없었다. ‘탈진’이나 ‘탈수’와 같은 용어를 알게 된 것도 그 때 였다. 
그렇지만, 우리는 언젠가 죽지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그 날까지의 시간은 짧지 않다. 그래서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기보다는 주어진 삶을 더 잘(의미있게, 행복하게)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. 문득 그런 결론에 도달한다.
그래서 훗날 내게 아이가 생기면 이렇게 전해주고 싶다.
'삶이란 끊임없이 더 나은 나와 내 삶을 위해 연습하는 것이란다.'
안 되면 될 때까지,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는 것이다. 잘 하게 되면 더 잘 하기 위해 또 연습하는 것이다.
웃는 것도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.
더 좋은 표정을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.
마음도 연습해야하는 것이다.
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다.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사랑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다.
아픔이 찾아왔을 때 견디고 이겨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. 행복하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것이다. 덜 두려워하고 용기내는 것도 연습하는 것이다.
자신이 모자라다고 느낄 때, 그건 네가 아직 연습이 모자라서라고 생각하라. 그리고 더 연습하기 위해 더 많이 부딪쳐라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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